교사들이 수능 감독을 싫어하는 이유
교사들은 수능 감독을 좋아할까? 수능 감독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능 감독을 하면 감독비 몇만원이 나오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긴장감이 도는 교실에서 서 있어야 하고, 자칫 실수하면 소송이나 행정적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감독비 안받고 감독안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다.
나 역시 수능 감독을 하다가 몸이 힘들어서 뒤에서 잠시 몸을 풀었는데, 한 학생이 째려보며 "감독관님! 신경쓰이거든요"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동상과 같은 자세로 서 있어야만 했다. 심지어, 여감독관이 하이힐을 싣고 돌아다니는 통에 시험을 못봤다며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민감한 시험이라는 것이다.
수능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 입시는 국가고사(수능), 내신, 대학별 고사가 결합된 방식이다. 시대마다 강조점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독자들도 대부분은 본고사세대, 학력고사 세대, 수능 세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말은 이 세가지 입시체제가 함께 결합되면서 학생들의 고통이 극심했던 것을 표현한 메타포였다. 각 입시 체제의 장단점을 함께 생각해보면서 우리교육의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함께 모색해보자.
수능은 전국 1등부터 꼴찌까지 한 줄로 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른바 표준화가 가능하다. 내로라 하는 교수진들과 교사진들이 시험 문제를 출제하니깐 신뢰성도 높다. 변별력이 가장 확실한 시험 체제로 볼 수 있다. 특히, 고급 사고력을 물을 수 있기 때문에 수업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수능 때문에 학교 내신 객관식 평가의 질도 어느 정도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4지 선다식 단답형 문항은 이제 고교에서는 구경하기 힘들다.
그러나 수능 시험은 고교 3년의 결과를 당일날 하루 만에 결정한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이 자살을 하기도 하고, 평소 1등급 맞던 아이가 당일 감기몸살이나 설사 등의 콘디션 난조로 3등급을 맞는 경우도 흔히 듣는 이야기이다. 어떤 수험생은 수능 당일 날 눈을 떠보니 아침 10시여서 울며 겨자 먹기로 재수를 하기도 한다. 역으로 평소 공부를 못하던 학생이 그날따라 최상의 컨디션으로 찍은 것마다 다 맞아서 소위 '대박'을 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단 하루만에 학생의 인생을 결정짓는 잔인한 시험일 수 있다.
또하나의 문제점은 수능이라는 것은 부모의 계층변인이 상당히 많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어학연수라든지 조기유학을 다녀온 학생이라면 시골에서 공교육을 통해서 영어공부만 학생에 비해서 영어 1등급을 맞을 확률은 매우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수능은 학력 변별이 아닌 계층 변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증적 연구를 봐도, 부모의 소득 수준, 학력, 직업군과 수능 성적은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즉, 잘사는 집 아이들이 수능도 잘 본다는 이야기이다. 더 큰 문제는 가르침과 평가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은 교사가 가르쳤는데, 평가는 대학 교수들이 한다. 평가의 원리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수능은 고교 교육과정을 사실상 규징짓는다. 국가가 고시한 교육과정 문서가 있지만, 수능 앞에서는 사실상 다 필요없다. 수능에서 출제가 되느냐 안되느냐가 교사의 수업 내용을 규징짓는다.
솔직히 말해서, 대한민국 인문계고교에서 고3 학생들이 계발활동을 제대로 할까? 적어도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자습으로 대치하였다. 희한한 것은 그러고도 계발활동에는 "특정 분야에 흥미와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기록이 된다는 것이다. 수능에 들어가지 않는 과목 교사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고3 교실에서 예체능 교육은 설자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수능은 또하나의 교육과정이고 실질적 교육과정이다.
대학별 고사의 문제점
대학별 고사는 어떠한가? 최근 각 대학에서는 구술면접, 논술, 적성검사 등을 통해 수능과 내신의 보완 장치로서 대학별 고사를 친다.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출제하는 서울의 상위권 대학의 경우, 본고사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학별 고사는 주로 논술의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학습을 요구한다.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많이 써봐야 하고, 사고 체계 역시 유연해야 한다. 교사들 중에서는 좋은 문제가 많다면서 이를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고, 그런 방식으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제는 내신과 수능 체제와는 전혀 다른 별도의 시험 체제이기 때문에 특별한 준비를 요구하고, 여기에서 곧 사교육 수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수능과 내신으로 인해서 탈진한 학생들에게 대학이 별도의 고사를 치룬다는 것은 자신들의 행위가 공교육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 책무성에 대해서 대학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교 평가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평가권을 고수하고 그 영향력을 확대하려한다는 점에서 대학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
2008 대입안은 수능 비중을 낮추고(수능 등급화), 내신을 강화함으로써 공교육 정상화를 꾀하려 했지만, 각 대학은 변별력이 낮다는 이유로 2008 대입안에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별도의 논술을 강화시켰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들이 좋은 교육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특목고생과 같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수시모집에 합격을 해도 상당 수준의 수능 최저 기준을 요구한다. 심지어 다단계 전형에서 1차 합격자수를 10배수-30배수로 뽑기도 한다. 특목고 받겠다는 노골적 메시지이다. 내신 1-3등급은 거의 같은 등급으로 쳐준다.
이러한 내신 무력화 전략은 내신 체제 산출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공교육을 대단히 무력화시키고 있으며, 비효율적인 체제로 전락시켜버린다. 학생들은 상대 평가 내신과 백분위 수능이라는 한줄 세우기 교육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여기에 대학이 요구하는 시험까지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 이 글에 이어 내신에 대한 이야기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안을 제안하는 글이 이어집니다.
네모선생님은 교사로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시다가 휴직을 하시고 교육사회학을 공부하였으며, '좋은 교사운동', '사교육걱정없는 세상'과 같은 단체에서 교육문제에 관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교육과 청소년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십니다.
'네모선생의 교육의 재발견'에서는 네모선생님이 생각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대안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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