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선생
2005년도의 일이니깐 내 나이 33살 때 일이다.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지하철만 타면, 나는 조는 습관이 있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서 전화를 받았다. 졸다 받은 내 목소리는 잠겼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 칠성(가명)이에요”
마침, 지하철 정차 안내 방송이 나오면서 전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누구라고?”
내 목소리는 커졌다.
“저 00고 1학년 반장했던 칠성이에요”
잠이 갑자기 확 깼다.
“야, 반갑다. 칠성이구나. 정말 오랜 만이다. 너 군대 휴가 나와서 보고, 못 봤지?”
“네, 선생님, 평소에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저.... 선생님께 부탁이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뭔데, 말해봐”
“저, 곧 결혼해요”
“뭐, 정말이야? 축하한다. 그런데, 너 나이가 25살도 안됐을텐데, 벌써 결혼을 하니? 한참 빠른 것 같은데”
“사실은요, 저 사고쳤어요. 죄송해요. 아무튼, 결혼식이 다음 달인데요, 선생님께서 주례를 서 주셨으면 해서요”
“뭐?”
“야! 안돼. 내가 주례를 서기에는 너무 어려. 다른 분 찾아봐.”
“어머니께서도 선생님께서 서 주시기를 원해요”
“아무튼, 안돼. 생각은 해보겠지만, 다른 분을 꼭 찾아봐라. 그리고 지금 지하철이라서 길게 통화하기 어렵고, 내일 따로 통화하자. 그리고 한번 만나자”
“네, 선생님. 다시 연락드릴께요.”
그런데, 사연이 많은 아이였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고, 아버지는 새 엄마랑 사는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는지, 옥탑방에서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 복잡한 환경 속에서 성적은 점점 떨어졌고, 결국 지방의 어느 사립대학을 갔다. 녀석이 대학교 1학년때, 스승의 날 전날 만났는데, 풀이 많이 죽어있었다. 만나는 선배들마다 ‘학교에 비전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듣고는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학교를 자퇴하였다. 이후, 군대를 갔다. 녀석이 병장 휴가 때 내가 근무하던 학교로 찾아왔다. 같이 점심을 먹었다. 학교로 찾아온 녀석은 늠름한 군인이었다. 훈련소 조교 생활을 했단다.
녀석은 불쑥 추천서를 하나 써달라고 했다. 수시 모집을 통해서 한번 대학에 도전보겠다는 것이다. 추천서를 쓰기 위해서 녀석의 생활기록부를 다시 살펴봤는데, 1학년 때와 달리, 2학년과 3학년 내신은 많이 떨어져있었다. 이래가지고는 수시합격이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결과가 좋지 않았다. 칠성이는 전문대학교에 간다고 했다.
그 이후 몇 년은 연락이 두절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결혼한다면서 칠성이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었다. 아무튼, 겸사겸사 영등포의 한 보쌈 집에서 칠성이를 만났다. 그와 결혼한 애인도 함께 데리고 왔다. 예쁘게 생긴 아가씨였다. 칠성이는 결혼을 서두르게 된 사연을 말해주었다.
군대를 제대하고는 학비를 벌기 위해서 전기 설비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단다. 그러다가 이 회사에서 근무를 하는 회사원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그런데, 그만 하룻밤의 실수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욕을 먹었다고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지만, 결론은 결혼을 해서 본인이 책임지기로 했단다. 우선은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복학을 미루고, 일을 하기로 했고, 조금 안정되면 다시 전문대학에 들어가서 졸업하기로 했단다.
나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서 자신의 인생을 더욱 고단하게 만든 녀석을 꾸짖었다. 내 기억에 꿀밤을 한 대 때렸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녀석이 대견했고 고마웠다. 요즈음 세태의 흐름대로라면 ‘낙태’의 길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낙태’를 하면, 사실, 상황이 복잡해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혼을 한다는 것은 풀어야 할 인생의 방정식이 더욱 복잡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복학도 미루고, 우선 가정을 꾸리고, 무엇보다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25살의 나이에 했다는 것이 기특했다. 칠성이네 집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결혼을 하겠다는 순간, 집안에 상당한 걱정을 안겨주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 분명히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런 감동에 취해서 그만 기꺼이 주례를 서주겠노라는 약속을 하고 말했다.
집에 와서 상황을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 나이가 33살인데, 주례를 서면 권위가 서나? 어르신들도 많이 올텐데...” 갑자기 그 이야기를 들으니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행이 내 얼굴이 노안이라 평소 40대 수준으로 봐줄 것 같기는 했지만,- 평소 나이 들어 보이던 이 얼굴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아무리 생각해도 주례를 서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인 것은 틀림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재미있다면서 웃기만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내 어머니 역시 처음에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셨지만, 제자가 담임을 주례로 원하는 것은 그만큼 존경의 표시를 보인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랑의 증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격려해주셨다.
아무튼, 약속은 약속이니 주례를 서야만 했다. 주례 식장에는 칠성이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주례사였는데, 머리가 허연 어르신들이 주로 앞좌석에 많이 앉아계셨다. 그분들을 보면서 갑자기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암튼, 어떻게 주례를 했는지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땀을 많이 흘렸던 것 같다.
결혼식 이후에 사실 칠성이는 많은 고생을 했다. 학생 신분으로서 돈도 벌어야 했고, 일도 해야만 했다. 그 고생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짐작이 갈 것이다.
다행히 전문대학을 졸업하고는 대기업의 기술직 정사원으로 채용되었다. 합격하던 날, 녀석은 흥분된 목소리로 내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다. 나 역시 얼마나 기쁘던지...지금은 칠성이가 내게 가끔씩 전화를 걸어 자신의 근황을 알려준다. 6살된 딸이 이제 유치원에 다닌다고 했다.
요즈음 ‘낙태’에 관련한 사회적 논쟁이 붙는 모양이다. 한쪽에서는 불법 시술로 낙태를 감행하는 산부인과를 규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한쪽에서는 여성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임신 테스트기에 나타난 임신 표시 줄을 보며 울던 여 제자(당시 고등학생)에게 나는 그런 말을 했다.
“대한민국은 낙태시술로 수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면서 내뱉은 절규와 고통의 목소리가 흐르고 있는 땅이다. 나는 네가 살기 위해서 아이를 죽이는 낙태를 감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령, 최악의 경우, 네가 학교를 자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제자의 말로는 돈만 갖다주면 낙태를 해줄 수 있는 산부인과는 많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동의 없이도 낙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돈은 친구들끼리 계를 해서 모은다고 했다. 사태의 심각성에 부랴부랴 상담했던 그 여학생의 어머니는 상황을 듣고는 “당연히 낙태해야죠”라고 말했다. 이해는 했지만, 가슴은 아팠다.
나는 미혼모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 위한 성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그 방식의 진보성과 보수성은 나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제발,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누군가가 고통 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미혼모 등을 지원하고 재활할 수 있는 사회적 보호 장치를 더욱 많이 만들어줄 것을 촉구한다. 그러한 교육적, 복지적, 사회적 장치가 너무 없다는 것이 문제 아닌가? 아울러, 미혼모 등 사회적 약자를 더욱 사지로 몰아가는 우리들의 천박한 의식과 문화에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먼저, 생명을 우선시하려는 가치관이 우리들에게 먼저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칠성이를 만나면, 6살 된 칠성이의 딸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주어야겠다. 그리고 칠성이에게 말할 것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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