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선생
요즈음 들어 사교육에 관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아깝다 학원비' 소책자 해설 강의를 하러 다양한 곳을 다니고 있다.
10명중 9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쩜 그렇게 뻔뻔하게 사교육을 줄이라고 강의할 수 있는가? 강의를 하다보면,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강의 내용에 공감하지만, 일부 학부모님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사교육을 받지 않거나 줄여야 한다는 것에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만, 그대로 따라했다가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 못하면 책임 질거야?' 라는 일부 학부모님들의 표정이 읽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뻔뻔하게 강의를 한다. 분당 학부모님이 되었든 강남 학부모님이 되었든 난 주눅들지 않는다.
내가 뻔뻔해질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진로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급간 높은 대학을 잘 가는 것보다 본인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과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진로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려면, 멀리 볼 것도 없다. 고등학교 시절 고3때 졸업했던 동창들을 한번 유심히 살펴보라.
우리 반에서 전교 1-2등을 다투던 친구 이야기를 하겠다. 그는 우리나라 최상위권 대학 영어영문학과에 들어간 수재였다. 그 친구를 나는 35살의 나이에 우연히 성균관대에서 만났다. 내가 박사학위를 마쳤을 때, 그는 석사학위 과정에 있었다. 교내에서 커피를 같이 마셨다.
그는 고3 때 담임선생님을 원망하고 있었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 영어영문학을, 고3 담임 선생님의 강권에 의해 대학에 맞추어 학과를 선택한 것이다.
적성에 별로 맞지도 않는 전공을 공부하느라 고생을 했고, 이제야 경제학이 자신의 적성에 맞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너무 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동창들을 한번 보라. 공부를 못한 학생들이라고 해서 다 빌빌거리면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공부를 잘한 학생들이라고 해서 다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본질은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길을 가고 있느냐에서 판가름난다.
명문대학을 나왔다는 것이 좋은 직장에 진입할 가능성을 그나마 높이는 것은 아직까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내 주변의 친구들도 대기업에 들어간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40대 중후반까지 그곳에서 버티기는 어렵다는 것을.....
한국사회에서 교육열이 뜨거운 이유는 무엇인가? 이른바, 명문대학을 나오면 노동 시장에서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공유된 경험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경험 체계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안정성과 수익이 동시에 보장되는 직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성장을 하면 고용이 함께 이루어졌는데, 한국 경제 구조는 이미 저성장, 저고용 체제로 들어선지 오래다. 기업들이 아무리 수익을 많이 낸다고 해도 그것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84%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현실은 더욱 치열한 취업 경쟁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힘들다. 철인 3종 세트와 같은 고난의 행군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죽어라고 수영했더니, 싸이클을 타란다. 죽기 살기로 싸이클을 탔더니, 마라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반죽음의 레이스가 우리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특목고를 가야하고, 명문대학에 가야하며, 대기업과 공사, 공무원 시험을 봐야 한다. 그렇게 간신히 통과해서 행복하게 사는가 싶었는데, 40대 후반에 명예퇴직의 압박을 받기 시작한다. 특별한 기술이 없으니, 프랜차이즈점을 알아보러 다닐 수 밖에.....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위 말하는 양질의 직장 20개 군을 향해 경쟁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인가?
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20개 군의 직장 역시 지금의 관점에서는 주목받겠지만, 그것이 10년 뒤에도 그 인기가 지속된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진로교육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학교에서는 진학교육은 있지만 진로 교육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진로교육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전문성을 갖춘 교사가 필요하고, 학생들에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교육과정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진로교육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한 사람도 없고, 방법론 조차 매우 취약하다.
교육과정의 체계 조차 잡혀 있지 않다. 교대와 사범대에서는 이 분야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수업 시수가 적은 분들이 맡는 경향이 있다. 교육과정과 교육청 지침에서는 진로교육을 강화하라고 말하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진로교육만큼은 교재 하나 달랑 들고 가르쳐서는 그 효과를 보기 어려운 과목이다. 진로교육을 둘러싼 다양한 지원 체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물적, 제도적, 인적 토대
없이는 진로교육의 생명력은 반감되고 만다.
이제는 입시경쟁과 사교육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진로교육으로 돌려야 한다.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그렇다. 그래야만 '좁은 문'을 향한 고난의 경쟁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네모선생님은 교사로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시다가 휴직을 하시고 교육사회학을 공부하였으며, '좋은 교사운동', '사교육걱정없는 세상'과 같은 단체에서 교육문제에 관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교육과 청소년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십니다.
'네모선생의 교육의 재발견'에서는 네모선생님이 생각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대안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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