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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청소년들의 눈으로

박물관에서나 볼 학급당 40명, 교육의 파탄?





요즘 학급당 학생수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일부 도시지역에서는 여전히 학급당 학생수가 40명 내외에 달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학급당 학생수가 40명을 훨씬 넘는 중학교 때문에 학부모들의 걱정이 많습니다. '과밀학급'이라는 말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09년도의 우리나라
학급당 학생수는 초등학교 27.8명, 중학교 34.4명, 일반계 고교 35.9명이었습니다. 평균은 이렇지만, 농촌지역에서는 학급당 학생수가 적고 빈교실이 생기고 학교가 없어지는 상황이지만, 일부 도시지역에서는 학급당 학생수가 40명이 넘는 콩나물교실이 많을 정도로 불균형이 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학급당 학생수 40명'은 단지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수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나라 교육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아래는 일본의 교육학자인 사토 마나부 교수가 일본과 한국같은 동아시아 교육의 특징을 묘사한 것입니다.



학급당 40명이 넘는 학생들이 교과서와 칠판을 중심으로 일제수업을 하고 책상과 의자가 하나씩 떨어져 앞만 바라보는 교실은 지구상의 일부(동아시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으로 그 밖의 나라에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세계의 교실은 초.중.고등학교에서도 몇 개의 테이블로 조직되어 본질적인 테마를 중심으로 서로 협동하여 깊이 있게 탐구하고 배우는 장소로 변하고 있다.

**사토마나부,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북 코리아, 2003

한마디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교실의 모습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뒤떨어진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지금의 어른들이 어릴 때에는 학급당 학생수가 더 많았습니다.제가 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했습니다.

어른들 중에는 '우리 때에는 학급당 학생수가 훨씬 더 많았어도 공부했는데'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그런 교육이 그 때의 사회에 맞았던 것입니다. 그 때에는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일자리가 많이 생길 때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취직이 될 때였고, 계속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길 때였습니다.

그래서 학급당 학생수가 많아도, 획일적인 교과서를 가지고 주입식으로 가르쳐도 괜챦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대량의 지식을 획일적으로 전달하는 교육이 그 당시의 산업화에 맞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부모세대보다도 더 높은 학력을 가지고 더 좋은 일자리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회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노동시장도 바뀌었습니다. 제조업의 고용은 줄고 있습니다.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는 어려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대학진학율이 80%가 넘는 상황이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예전의 기준에 맞는 그런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에서 이루어지던 동아시아형 교육은 이제 시대와 사회에 맞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아시아형 교육은 산업의 급속한 확충과 발전을 전제로 하는데, 더이상 고도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동아시아형 교육도 파탄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복합적인 지식을 요구하는데, 기존의 동아시아형 교육으로는 이런 요구에 맞출 수가 없다고 사토 마나부 교수는 지적합니다. 특히 학급당 40명이라는 인원은 이제는 사라져야 할 유물이라는 것입니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20명 내외의 아이들이 작은 집단으로 테이블에 모여 앉아 배우는 협동학습이 기본이 되고 있고, 교과서는 이제 보조자료가 되어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배우는 양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언제쯤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이번에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새로 임명된다고 합니다.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에 관한 말은 무성하지만, 가장 기본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다른 건 제쳐두고 박물관에나 들어가야 한다는 학급당 학생수 40명의 교실부터 바꾸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