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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의 교단일기

공감능력만 있어도 학교가 좋아질텐데... 그런데 떡볶이가 나를 도왔네^^

오늘은 OO이가 우리반 아이들과 얽힌 실타래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과 밖으로 나가기로 한 날이다. OO이를 불러 오늘 꼭 같이 나가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받았다. (지난 글 : 자기 손등에 상처를 낸 아이, 어찌 이러냐. 네 속이 얼마나 괴로우면 이러냐)

얼마나 불편한 자리인지, 얼마나 피하고 싶은 자리인지 알지만 이렇게 계속 너 자신을 괴롭히며 지낼 수는 없지 않겠냐며 거의 반강제적으로 마련한 자리인지라 이 녀석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쩌나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OO이는 내 부탁을 들어주었고, 관계가 틀어진 6명의 친구들과 어색한 동행을 하게 되었다. OO이를 뺀 나머지 아이들은 학급의 다른 아이들이 모르게 담임과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떠 있었다. 6명의 아이들은 함께 걸으며 깔깔 웃었고, OO이는 묵묵하게 내 곁에서 걸었다.

걷는 내내 어떻게 말을 풀어야 할까 머릿속이 뿌연 느낌이었다. ‘뭐 사람 관계라는 게 각본 짠 대로 되는 게 아니니 그냥 부딪혀보자’고 생각했다. 그저 분위기가 따뜻하면 아이들 마음도 따뜻해져서 서로에 대해 조금은 여유롭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라는 것만 믿었다.

그리고 우리는 즉석떡볶이집에서 보글보글 떡볶이를 끓이며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엄청 어색하게 내 옆에 앉아 있는 OO이에게 ##이와 **이가 먹어보라며 직접 그릇에다 떡볶이까지 담아준다.

OO이는 배부르다고 안먹겠다는데도 ##이는 특유의 따뜻함과 유머를 섞어 넉살좋게 담아준다. 그리고 **이는 물갖다 줄까 하면서 물까지 갖다 준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자신들도 OO이에게 쌓인 것이 많을텐데도, 며칠간에 걸쳐 내가 한 사전 작업 속에 녹아 있던 내 진심이 통한 걸까?

그래 우선 배부르게 먹고 보자. OO이도 친구들의 배려가 고마웠던지 어색하지만 맛있게 먹었다.  'OO이 잘 먹네' 했더니 아침도 점심도 안먹었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그렇게 되고 난 이후 내내 점심을 안먹는데 아침까지 안먹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모두 즉석떡볶이를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아이들 얼굴에서 포만감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플리커 프로 계정을 탄 더마..
플리커 프로 계정을 탄 더마.. by Fribirdz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아이스크림 가게로 자리를 옮기고 아이들은 얘기를 시작했다. 6명의 아이들이 OO이에게 속상했던 얘기를 하고, OO이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직접 전하지 못하고 나를 통해 겨우 전한다.

며칠 전부터 6명의 아이들을 만나서 OO이의 심정이 어떨지 생각해보자고 얘기를 했을 때는 “우리랑 안놀아도 잘 지내는 것 같은데요 뭐”라고 했던 아이 중의 하나는 사실은 자신도 초등학교 때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고, 틀어진 이유가 뭐가 되었든지간에 정말 학교에 가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할수만 있어도 아이들의 삶과 학교가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공감 능력이 있는 아이들로 자라게 도와줄 수 있을까.

아이들과 헤어지고 OO이와 둘이서 걸어오는데 “선생님 오늘 나오기를 잘했어요”라고 말한다. 그래 OO아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 일이 너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거야. 이제 더 이상은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말기를....    

그리고 행여나 그 화살이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지도 말기를...

호박꽃 선생님은 경기도 어느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호박꽃의 교단일기'는 호박꽃 선생님이 교실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소소한 일상들과 그 속에서 부딪히는 고민들을 이야기로 풀어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