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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의 교단일기

중학교 1학년 사춘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마음이 편해질까?


OO와 **는 오늘도 지우개를 다지듯이 작게 자른다. 그리고 서로 던지고 논다. 교실 바닥에 지우개 가루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왜 그러냐고, 그러지 말라고 하면 대답은 해놓고 며칠 동안 계속 반복이다.

하도 정신없이 그런 행동을 계속 해서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 녀석들 속이 뭔가 편치 않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는 언제나 수업 전에 내게 와서 컴퓨터나 수업 자료를 챙겨가고, 과학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어수선하게 해 놓은 뒷마무리까지 잘 도와줄 만큼 듬직하던 아이였다. 그래서 농담으로 ‘사위 삼아도 좋겠는데’라는 농담을 건네던 아이였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이 녀석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데다 수업 시간에 대답도 안하고, 뭔가 삐진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무슨 일이 있냐 물어봐도 대답도 없다. 주변 아이들이 ‘며칠 전부터 ##이가 삐딱해지기로 했다고 했어요’라고 말한다.


$$는 다른 반 반장인데 범생 중의 범생이다. 그런데 오늘은 수업 시간에 평소의 $$이와 다르게 너스레도 떨고, 말대답도 한다.  ‘야, $$ 많이 컸는데...사춘기가 오나 보네. 너희들 3, 4월과 좀 달라진 것 같다’ 했더니 아이들이 제각각 한마디씩 한다.

엄마와의 갈등 얘기, 괜히 짜증난다는 얘기... 전형적인 사춘기 증상들을 보인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너희들도 너희 자신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가고, 부모에게 괜히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부모들도 그런 너희 모습이 몹시 당황스러울 거라고...


어제 교실 바닥 물청소 땡땡이 친 아이들 몇 명을 남겨서 함께 바닥 청소를 하며 얘기를 나누어 보니, 이건 완전히 고등학교 3학년 같은 중학교 1학년들이었다.

다음주가 기말고사 기간이라서 학원에서 거의 10시에서 11시쯤에 집에 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지난 토요일에는 8시간 동안 학원에 있었다는 아이도 있었다. 이 녀석이 바로 지우개를 잘게 자르던 아이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 좀 안다니면 좋겠다고 한마디씩 한다. 나는 너희들이 부모님께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학원 다니는 시간에 대해 타협을 해 보라고 권해 본다. 학원을 다녀도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없으면 효과가 없으니까 말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한다고 해도 믿어주시지 않는다며 타협이 잘 안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들이 스스로 안하니까 학원을 보내는 거라며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대로라면 아이들과 부모는 서로 상대방 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믿어주지 않아서 아이들의 자율성이 없는 것일까, 아이들의 자율성이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 아이 쪽이나 부모 쪽이나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도 하다. 어느 순간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마구 뒤섞여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건 선생과 아이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럴 땐 나에게 ‘믿는 만큼 자란다’는 주문을 걸어야 그나마 한발짝 떨어져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6월의 중학교 1학년 아이들, 스스로도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회오리의 정체를 알 수 없고 자꾸 짜증만 나고, 그래서 별 것 아닌 걸로 어른에게 대들듯이 툭툭 말을 던지는 아이들..

그들은 오늘도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회오리를 잠재울 기회도 없이, 잠시 눌러둔 채 학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내일이면 다시 학교에서 지우개를 다지고, 종이를 잘게 찢는 놀이를 반복하면서...


호박꽃 선생님은 경기도 어느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호박꽃의 교단일기'는 호박꽃 선생님이 교실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소소한 일상들과 그 속에서 부딪히는 고민들을 이야기로 풀어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