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10월 5일 공포되었고, 곧바로 효력을 가진다니 사실상 체벌은 전면 금지된 셈이다.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학생인권조례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영상물을 제작하여 각 학교에 배포하고 연수도 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지난 금요일 교직원 연수 시간에 영상물을 함께 시청했다. 아무도 말하진 않았지만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동료 교사들과 얘기를 해보면 ‘학생을 인권의 한 주체로서 존중하고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해줌으로써 그들이 올바른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성장하게 돕는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의 흐름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다만 그 흐름을 받아들일 때, 체벌을 해 왔던 교사와 하지 않았던 교사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체벌을 해왔던 교사는 막막한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체벌을 하지 않았던 교사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체벌을 하지 않고 지도하는 나로서도 어려움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체벌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 않으면, 교실 상황에서 체벌의 유혹을 느끼는 경우는 허다하다.
아무리 말을 해도 계속해서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 교사의 정당한 지도에도 자기 감정을 못 이겨 교사에게 욕을 하는 아이들, 매시간 수업 자료를 전혀 준비해오지 않는 아이들에게 체벌없이 지도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도를 닦는 과정이다.
내가 도를 닦을 게 아니라 나의 지도를 통해 아이들의 행동이 개선되어야 하는 데, 당장의 효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체벌의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매 앞에 장사 없다’고 체벌은 잘못한 아이에게나 나머지 아이에게나 두려움을 유발함으로써 순간적인 효과를 보는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잘못하는 아이들을 교실 뒤에 세워놓고 수업을 듣게도 했다가, 더 심하면 교실 밖에 세워보기도 했다가, 수업 후에 따로 불러서 대화도 나눠보기도 하지만 어려움은 해마다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학생의 수업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는 교실 밖에 세워둘 때가 있다. 그런데 밖에 내보낸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이 아이가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서 수업을 방해하거나 또는 복도를 배회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 모든 걸 교사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체벌이 없는 대신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공식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으면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체벌을 해 왔던 선생님들도 똑같이 겪을 것이다.
교육청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 지침을 내려 보내겠다고 한다. 하지만 절차만 있으면 뭘 하는가? 그런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교실’을 만든다면 이 교실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런 모든 일을 학생부 교사와 교과 담당교사, 담임이 지도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업하다말고 그런 아이들을 지도하러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시스템을 잘 만들어두어도 그 시스템을 담당할 인력이 지원되지 않으면 그저 그럴싸한 시스템일 뿐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도 그 시스템이 실효성이 없다는 걸 곧바로 알게 될 것이고, 학교 현장은 혼란 속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무상급식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이런 인력 지원일 수도 있다. 먹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의 하나라면, 우리 아이들이 체벌없이 존중받으며 교육받고, 잘못을 했을 때는 진정으로 자신을 성찰하며 성장하는 것도 중요한 권리 중의 하나이다.
결국 인력 배치가 빠져 있는 체벌 대체 학생지도 프로그램이라면 반쪽짜리일 뿐이다.
아이들은 이미 ‘이제 못 때린다면서요?’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로 하여금 체벌이 없어지는 것이 사실은 자신에게 더 큰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
온정주의에 의해 교사가 때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성장해갈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말이다.
호박꽃 선생님은 경기도 어느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호박꽃의 교단일기'는 호박꽃 선생님이 교실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소소한 일상들과 그 속에서 부딪히는 고민들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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