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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의 교단일기

아이들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도시, 꿈은 아니다.

 

 

이런 도시가 있다.


시청 공무원이 매달 한번씩 네 번째 일요일에 아이들이 하는 회의에 참여하여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지역에 있는 아이들이 더 많이 참여하게 할 수 있을지 그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모색한다.


이 회의에는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기 때문에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모인다. 그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의 아동.청소년정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활동을 한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센터 건립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아이들의 정책 제안은 시에 접수되고, 시의 각 부서에서 논의하여 그 결과를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또 아이들은 아니지만 20대 청년들이 직접 시의 각종 심의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았다. 아이들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갓 20대가 된 청년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활동을 하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은 OB(Old Boy) 모임을 만들어 아이들의 조력자 또는 서포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협력하는 것을 배우고, 또 그 경험이 후배들에게 전수된다.


이런 활동 경험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참여’의식을 높아지게 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자기 삶에 대해 주도권을 가지는 자립적인 아이들로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적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도시의 아이들이 보통의 아이들보다 특별히 더 성숙해서 이런 활동들을 믿고 맡기는 걸까?


지금 소개한 이 도시는 인구 11만에 불과한 일본에 있는 작은 소도시인 타지미시이다. 나는 지난 1월에 타지미시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타지미시를 방문하게 된 것은 책이나 다른 자료를 통해서, 타지미시에서 1999년도부터 아이들의 참여 기구인 ‘아동회의’가 개최되고 있고, 2004년부터 '아동권리조례'가 시행되는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아이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실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는 지인 덕분에 담당 공무원과의 약속이나 통역 문제가 해결되어, 아동회의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과 아동회의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아이 2명을 만날 수 있었다.

타지미시의 아동회의는 1년에 1번 열린다. 아동회의의 주제는 매년 바뀐다. 학교생활, 핸드폰, 아이들과 어른들의 관계 등이 아동회의의 주제가 된다. 그리고 아동회의를 기획하고 준비하고자 하는 아이들이 '아동스탭'이라는 이름으로 1달에 1번 회의를 하고 있다. 

내가 만난 공무원은 아동회의와 아동권리조례를 전담하는 공무원이었다. 매번 아이들 회의에 참석해서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시청의 관련부서에 전달해서 의견을 받아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종의 조력자인 셈이다.

내가 만난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였는데, 아동스탭으로 참여하면서 언니 오빠들과 자연스럽게 섞여서 자유롭게 얘기하고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점점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숫자가 줄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너무 바빠서 활동할 시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내가 만난 아이는 학원을 빼 먹고서라도 여기에 오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아이들도 우리나라 아이들 못지않게 바쁘다니 참 씁쓸했다.

엄청 바쁘기는 한데 몸과 마음은 병들어 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힘들어도 지방의 작은 소도시 공무원들과 어른들이 아이들을 믿고 아이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기구 하나 만들어놓고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아이들이 시의 아동.청소년 정책의 실질적인 파트너가 되도록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


여기서 생각 하나가 스친다. 우리가 아이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그렇게 대우하기 때문에 그들이 미성숙한 존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성장 과정 중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접해 줌으로써 그들이 제 길을 찾아 당당한 한 인간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접해준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 아이들의 자기결정권, 다시 말해 참여권을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아이들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일에 자기 의견을 표명할 권리를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은 성숙하고 온전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자기 의견을 표명할 기회를 갖지 못한 아이들이 나이를 먹어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 한 번 제대로 준 적 없으면서 아이들이 자기 생각도 없고 의존적이라고 한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