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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글 이야기

공부에 뜻을 두지 않는 학생들을 보며, 스스로를 체벌한 교사


흔히 '스승이 없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존경할만한 사람이 없다는 얘기인데요.

저는 존경하는 스승이 있습니다. 살아 계실 때에 뵙지 못했지만, 나중에 그 분에 관한 얘기를 듣고 책을 읽으면서 마음깊이 존경하게 된 분입니다.

강원도 원주에 사시며 민주화운동, 협동운동의 어른으로 역할하셨던 장일순 선생님이신데요.

장일순 선생님은 본인이 20대 중반의 나이이던 1950년대 중반에 강원도 원주에서 대성중고등학교를 세우는 데 참여하고,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학교법인의 초대이사장이셨는데 직접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셨다니, 요즘 사립학교들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느껴지는 점이 많습니다.





학교 이름을 대성이라고 지은 이유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세웠던 대성학교의 맥을 잇는다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그 때의 일화가 '좁쌀 한알(도솔출판사)'이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6.25 전쟁 직후여서 굉장히 열악한 상황에서 교육을 해야 했답니다. 교사 구하기가 어려워서 장일순 선생님도 영어, 미술, 철학, 한문을 직접 가르쳤다고 합니다. 학생들도 생활이 어렵다보니까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장일순 선생님이 지팡이 길이의 굵은 몽둥이 하나를 들고 학생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잘못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 대답들을 해 봐?"

그러자 학생들이 "매를 맞아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장일순 선생님은

"그렇지. 잘못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나는 너희들의 선생이다. 선생이면 잘 가르쳐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너희들이 학업에 뜻을 두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허송세월하는 것도 다 내가 너희들을 일깨우지 못한 탓이다. 다 내 책임이다 이 말이다"라고 말하면서 바지를 걷고 책상 위에 올라서서 출석부를 펼쳐 들었다고 합니다.

"1번 나와라"
"너부터 때려라"

그날 장일순 선생님은 학생들로 하여금 종아리에 피가 흐를 정도로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리어카에 실려 출근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학생들이 공부에 소흘하자 수업을 마칠 때 여러번 눈물을 흘리며 우시는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열정적인 교육자이던 장일순 선생은 그 후에 학교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시국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나온 다음에 학교 이사장으로 다시 취임했지만, 정권의 압력을 받고 사임하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원주의 대성학교는 지금까지 계속 남아 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장일순 선생이 쏟았던 열정이 학교에 알게 모르게 남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성공회 신부님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신부님께서 원주 대성학교를 졸업하셨더라구요. 신부님께서 '나도 학교 다닐 때에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내가 다닌 학교가 장일순이라는 훌륭한 분이 세웠던 학교였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학교의 분위기가 다른 학교와는 상당히 달랐던 것같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원주 대성학교의 교훈이 '참되자'라고 합니다. 이 짧은 세글자가 가지는 무게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