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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청소년들의 눈으로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습니까?



대안교육 잡지인 민들레에 쓴 글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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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삶이 무너지다

올해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을 꼽는다면,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무엇보다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그동안 핵발전을 보면서도 ‘설마 사고가 나랴.’ 생각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후쿠시마 사고는 핵발전이 인간의 삶과 공존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후쿠시마에 직접 다녀올 기회는 없었지만, 후쿠시마를 방문한 사람들이 가져온 사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3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는 후쿠시마 시에는 사람들이 그냥 살고 있었습니다. 또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학교의 운동장에서 방사능을 측정해 보면 기준치의 몇 배가 넘는 방사능이 측정되고 있습니다. 이미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된 곳에서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떠났을 거라고 하니, 떠날 수 없는 집의 아이들만 남아서 방사능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지난 9월에는 일본의 사진작가인 모리즈미 다카시(森住 卓) 사진전이 한국에서 열렸기에 또 다른 사진들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양배추를 들고 시위에 나온 농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농민들의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무도 살지 못해 개들만 돌아다니고 있는 마을에 ‘원자력은 미래의 에너지’라는 플랜카드가 그대로 걸려 있는 것을 보면서, 정부가 그동안 해온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얘기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소박한 일상의 행복을 가꿔온 사람들의 삶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일시적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사실상 영원히 무너졌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회복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땅과 바다는 방사능으로 오염되었고, 농산물과 수산물도 방사능으로 오염되었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암과 백혈병, 기형아 출산은 늘어날 것이고, 사람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한 세대를 넘어 지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사회는 ‘후쿠시마 이전’과 ‘후쿠시마 이후’로 명백하게 구분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무감각함이 저에게는 더 충격이었습니다. 사고 직후에만 잠깐 관심을 보이던 언론과 정치인들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잠잠해졌습니다. 아무도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얘기하지 않습니다. 보수 언론들은 핵발전 외에 대안이 없다고 떠들고, 진보 언론들도 이 문제에 집중하지는 않습니다. 정치권을 보면 더 한심합니다.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의 당론도 ‘핵발전 유지’입니다. 진보정당들의 관심도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합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신규핵발전소를 계속 허가해주고 있고, 새로운 부지도 곧 선정할 예정입니다. 이미 가동 중인 21기만으로도 전 세계에서 핵발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인데, 최소 13기 이상을 더 짓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너무 무감각합니다.

사실 핵발전이야말로 가장 정의롭지 못한 행위입니다. 전기를 많이 쓰는 대도시에는 핵발전소를 짓지 않고, 바닷가 마을에 지어서 송전탑을 건설해 환경을 파괴해가며 전기를 끌어오는 게 핵발전입니다. 또 가장 하층의 비정규 노동자들을 가장 위험한 작업에 종사시키는 작업장이 핵발전소입니다. 게다가 위험한 핵폐기물을 뒷세대에게 무책임하게 떠넘기는 것이 바로 핵발전입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정의롭지 못하고 비윤리적인 일은 없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개입하라

지금까지 저는 풀뿌리에서 노력하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일상을 변화시키고 동네를 변화시키고 지역을 변화시키는 것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생각을 좀 바꾸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큰 흐름에 개입하지 못하는 풀뿌리는 이렇게 약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후쿠시마에서 유기농업을 지어온 농민이 자살을 하고, 농업과 협동조합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핵발전과 같은 큰 문제를 방치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핵발전은 실제로는 싼 에너지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싼 에너지로 느껴지는 것은 부담해야 할 비용을 뒤로 미뤄두는 방식으로 일종의 ‘분식회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핵발전소는 수명이 끝난 후에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해체해야 하며, 핵발전 후에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해야 합니다. 방사능이 모두 사라지려면 10만년 이상을 보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뒤처리 비용까지 염두에 두고 따져보면, 핵발전은 결코 싼 에너지가 아닙니다. 게다가 후쿠시마처럼 사고라도 나면, 국가가 붕괴할 정도로 타격을 입습니다. 지금 일본 정부가 68조원 정도를 사고 수습 비용으로 계산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사고를 수습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것까지 감안한다면 핵발전은 결코 싸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큰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마을 단위에서 대안적인 에너지 시도들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노력들이 필요하지만, 그것으로는 사회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이제는 핵발전을 단계적으로 폐기하도록 다른 대안을 세워야 합니다. 이미 독일, 스위스, 벨기에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마을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지금의 청소년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어려운 숙제들이 깔려 있습니다. 앞서 살아간 세대들이 풍요를 누리려다 저지른 잘못들을 지금의 청소년들이 모두 감당해야만 합니다.

문제는 지속될 수 없는 현재의 사회시스템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어리석음입니다. 안일함입니다. 짧은 이기심입니다.

인간이 석유를 본격적으로 이용하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은 백년도 안 됩니다. 핵발전을 시작한 것은 불과 50여 년 전입니다. 그러나 이제 석유는 고갈되고 있고 핵폐기물은 저장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쌓이고 있습니다. 지금의 석유 의존 경제, 핵발전 의존 전기시스템은 이제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불과 몇십 년 정도 유지되어 온 세계에 불과합니다. 그 몇십 년 동안 인류는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너무나 많이 했습니다. 책임 있는 어른이라면 우리가 이 몇십 년 동안 저질러온 일들을 어떻게 수습하고, 이 세상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나은 상태로 만들어놓고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들이 쳐놓은 경계, 마을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발은 굳건하게 디디고 있되, 경계를 넘어서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힘을 모아야 합니다. 큰 변화를 위해 작은 힘을 모으는 것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에 시스템을 변화시킨 유일한 방법입니다. 일상을 변화시키는 것부터 정치를 변화시키는 것까지 다양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행동을 해야 할 때입니다.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저는 올 봄부터 핵발전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인들, 관료들, 전문가들에게 맡겨놓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핵발전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핵발전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는 수준에서 교육이나 강연도 하고, 글도 쓰고, 최근에는 인터넷 방송도 해보기로 했습니다. 내년 3월 11일 후쿠시마 1주년 때까지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변화는 생애 최초로 정당의 당원이 되기로 한 것입니다. 있는 정당이 아니라 없는 정당을 만들어서 당원이 되기로 했습니다. 우리 삶을 위협하는 핵발전을 중단시키고 농업과 농촌을 살리자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제대로 다뤄지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일자리 100만개’니 어쩌니 하는 헛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자립과 행복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녹색당(www.kgreens.org) 창당작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행동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행동할 것입니다. 결국 희망은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래서 2011년 12월에 누군가가 저에게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저는 솔직히 “지금은 없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그렇다고 해서 이 땅을 떠나지 말고, 이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을 시작하자”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같이 희망을 만들자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와 우리, 그리고 청소년들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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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당 가입은 www.kgreens.org 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미래,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금 한국에도 녹색당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