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통과한 예산, 지방의회를 통과한 예산 때문에 말들이 많습니다. 저는 예산은 정책이고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예산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산은 정책을 실현하는 핵심적인 수단입니다. 그리고 예산이 편성되고 집행되는 과정은 그 어느 것보다도 정치적인 과정입니다.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온갖 로비와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예산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혁신하고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핵심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소위 ‘개혁세력’도 ‘이런 예산이 더 필요하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총체적인 예산혁신의 방향을 가지고 진지하게 논의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산을 혁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전제조건은 조세부담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간혹 이 전제를 무시하고 논의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그럴 경우에는 무책임할 수도 있고 비현실적인 논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탈세를 방지하거나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 강화를 통해 일정정도 세입을 늘릴 수는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현실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재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예산을 늘리려면 다른 예산은 동결하거나 줄여야 합니다. 더구나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교육, 복지, 일자리, 환경 등 써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따라서 줄일 곳은 상당히 많이 줄여야 정부살림이 유지가 될 수 있습니다.
예산혁신의 방향은?
그래서 결국 예산의 혁신은 불필요한 예산낭비를 줄이고, 예산의 우선순위를 바로잡는 것으로 실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막연하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예산을 혁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방안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상식과 지혜를 모으는 방식으로도 가능할 것입니다. 지역에서는 주민참여예산을 하려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예산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상식과 지혜로 판단이 가능한 문제들입니다. 어떤 일이 필요한 지? 예산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업이 여러 가지가 있을 때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지? 같은 문제는 정보만 있다면 누구나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 사람의 시민이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예산혁신의 구체적인 방안이 있습니다.
첫째, 불필요한 예산낭비를 대폭 줄여야 합니다. 4대강 사업처럼 타당성이 의심스러운 대형사업으로 낭비되는 예산부터 줄여야 할 것입니다. 차도 별로 안 다니는 도로를 닦는데 쓰이는 막대한 돈부터 줄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소해 보이는 관행적 낭비예산도 줄여야 합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된다’는 옛말도 있지만, 작은 예산을 엉터리로 쓰는 공직자나 정치인은 언제든지 수백억, 수천억짜리 예산낭비도 저지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소해 보이는 예산낭비라고 하더라도 그게 고질적인 것이면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현금으로도 뿌리고 선물값, 밥값, 술값으로 과도하게 쓰이는 각종 업무추진비부터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합니다. 업무추진비를 절반으로 줄였다고 업무추진을 못하는 공직자라면 공직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들 해외여행보내고 유학보내는 예산도 줄여야 합니다. 요즘 중앙정부부터 지방자치단체까지 공무원들 해외여행보내고 유학보내는 데 상당한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 돈으로 보내는 것이면 외국 정부에 파견을 보내든지 해서 우리나라 정부가 반드시 필요한 업무를 배우러 오라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대학에 유학을 보낼 이유는 별로 없다고 봅니다. 외국에 가서 학위따오는 게 정부의 업무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지 증명된 것도 없습니다. 가고 싶은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데 정부가 왜 돈을 지원해 주는지? 근본적으로 생각을 다시 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목적도 불분명한 해외여행, 해외연수도 줄여야 합니다. 제 주위에도 공무원들이 많이 있고, 이런 얘기들으면 싫어하겠지만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관변단체들에 대해 운영비 대주는 것도 없애야 합니다. 왜 자기 단체 운영하는데 정부가 예산을 보태줘야 합니까? 이런 돈만 합쳐도 전국적으로 수백억은 훨씬 넘을 것입니다.
그 외에 방만하게 쓰고 있는 전시성 행사비, 광고비도 줄여야 합니다. 이 돈만 해도 무상급식 예산 만들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있습니다.
여러 이익집단들의 이해관계가 끼어 있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별로 필요하지 않은 도로공사, 각종 보수공사는 왜 매년 하는 것일까요? 왜 학교운동장을 인조잔디로 바꾸는 데 엄청난 돈을 퍼붓고 있는 것일까요? 왜 16개 시ㆍ도 교육청은 1,0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서 따로 따로 사이버 가정학습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의문이 있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어쨌든 누군가는 정부에서 이런 데 돈을 쓰는 것 때문에 이익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데 돈을 꼭 써야 하는지? 의문투성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예산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기금이라고 따로 떼 놓은 돈은 더 ‘눈먼 돈’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기업, 공공기관에서 쓰는 돈들을 봐도 낭비가 많습니다. 감사원에서 가끔 감사결과를 발표한 것을 보면, 돈이 새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지금 말한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늘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질적인 병폐를 누가 고칠 수 있을까요? 공무원들이 스스로 고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국회의원들이나 지방의원들이?
그래서 예산낭비는 늘 반복되고 고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고치려면 시스템을 혁신해야 합니다. 문제들을 햇볕아래에 완전히 공개해야 합니다. 공무원이 아닌 시민의 눈으로 예산을 들여다보고 시민들의 상식으로 불필요한 부분을 삭감시킬 수 있는 시민참여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쟁점이 되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토의에 붙여서 하나하나 삭감하고 고질적인 병폐들을 없애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작년에 정권교체가 된 다음에 체육관에서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질적인 낭비예산들을 삭감하더군요. 우리나라도 그런 식으로라도 해야 합니다.
낭비근절과 함께 투명성, 참여가 필요
예산낭비 만이 문제가 아니라 예산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습니다. 국회에서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들어간 국회의원들이 마구 예산을 짜깁기 합니다. ‘지역구 예산끼워넣기’는 단골메뉴입니다. 국회 이전단계에서는 정부 공무원들이 예산의 우선순위를 주무릅니다. 그 과정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산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들과 함께 하는 토의가 가능하도록 바꿔야 합니다.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하는 단계부터 예산편성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각 부처에서 기획재정부에 보내는 예산요구서부터 공개하고 이 시점부터 시민들의 토론에 부쳐야 합니다. 이것이 꿈같은 얘기는 아닙니다. 이미 주민참여예산제를 제대로 실시하고 있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회에서 예산을 다루는 각 상임위원회의 소위원회 회의, 예결산특별위원회도 공개해야 합니다. 밀실에서 회의를 하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쪽지’를 주고 받으면서 예산을 누더기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과정이 공개되면 누구든지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의견을 낼 것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예산배분의 최우선순위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ㆍ청소년’에게 둘 것을 제안합니다. 단지 아동ㆍ청소년 복지예산 좀 늘리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산의 최우선순위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청소년에게'
장애나 경제적 어려움, 보살핌의 부족, 학교부적응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ㆍ청소년들에게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가 배려하고 존중해 줘 보자는 것입니다. 집중적이고 지속적이며 종합적인 지원을 해 보자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보조교사를 붙여서라도 학습과 학교적응을 돕고 체계적인 상담을 하며, 교사들의 잡무를 없애서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보자는 것입니다. 지역사회에서는 방과 후와 방학 동안에 아동ㆍ청소년들을 돌보고, 이 학생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붓고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편안하고 쉬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은 아동ㆍ청소년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보수언론에서도 가끔 보도하는 ‘빈곤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도 그렇고 ‘학교다운 학교’, ‘교육다운 교육’을 위해서도 이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일을 하는 데에는 적잖은 예산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줄여야 할 부분들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쓰는 예산은 토목공사에 쓰고 밥먹는 데 써서 없어지는 그런 예산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정성을 쏟는 것은 사람으로 남고 관계와 공동체로 남기 때문입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예산의 우선순위입니다. 물론 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견들에 대해 토론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의견을 접근해 가면 됩니다. 이렇게 예산의 우선순위를 정해가는 것이 민주적이고, 주권재민을 실현하는 것이며 상식이 실현되는 예산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밀실에서 자기들끼리 결정하는 예산은 민주적 정당성도 없고 공동체의 미래를 보장하지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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