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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대안/학생인권

맞아야 도덕적 감수성이 길러진다?






체벌금지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분들이 체벌금지에 대해 한마디씩 합니다.

21일자 한국경제신문에는 서울대 박효종 교수가 글을 썼네요.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한마디로 체벌금지 때문에 교사들의 권위가 서지 않아서 인성교육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효종 교수는 지금이라도 진보 교육감들이 학교 현장을 한번 가 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박효종 교수는 학교 현장에 얼마나 자주 가 보는 지? 궁금하지만, 그런 문제를 떠나서 박효종 교수의 이야기 중에 참 잘 이해가 안되는 얘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학생인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권은 어디까지나 '권리'의 개념이다. 무엇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무'의 개념과도 다르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책임'의식과도 다르다. 다만 무엇을 할 수 있다는 '허용'의 의미가 클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능력'의 개념이다. 만일 능력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허용만 하게 되면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십상이다. 그리스신화에서 보면 불이란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 몰래 가혹한 처벌을 감내하면서까지 인간의 품위있는 삶을 위해 전해줄 정도로 소중하고도 필수적인 것이지만,제대로 쓰려면 불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린이에게 성냥을 주는 것을 조심하는 이유는 성냥을 가졌다고 재미삼아 사용함으로써 산불이라도 내면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술과 담배를 학생들에게 금지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원리다. 술과 담배는 자신의 몸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가에 대한 반성능력이 있고,또 자기절제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때 허용할 수 있는 것이지,단순히 술 담배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나머지 즐기게 되면 일그러진 인간이 된다.

바로 이것이 미성년자에게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권리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격이 성숙한 성인들만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많은 권리를 하루아침에 '선물보따리'처럼 주는 것은 잘못이다.

학교는 인성 전반에 걸친 전인교육을 담당하는 곳이다. 당연히 교육은 학생에게 어떤 권리를 주었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게끔 미완성의 인격체를 어떻게 온전한 인격체로 만들 수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특히 온전한 인격체를 만들려면 도덕적
감수성,자기반성 능력과 의무감,그리고 책임의식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돌을 던질 권리가 있다고 해서 연못을 향해 무작정 돌을 던지면 어떻게 되는가. 연못 안에 있는 개구리가 맞아 죽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심심풀이로 연못에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 무심코 던지는 자신의 돌에 죄없는 개구리가 맞아죽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판단력이 도덕적 감수성이고 이런 감수성을 가질 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도 갖게 된다.



박효종 교수의 얘기를 거꾸로 뒤집어 놓고 보면, 학생들은 도덕적 감수성, 판단력, 자기반성능력이 부족하므로 체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리면 그런 능력이 길러지나요? 

'자신의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 있다'는 판단력이 체벌을 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것일까요?

오히려 체벌이 일상화되면 될 수록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그래서 '자신의 돌에 맞은 개구리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요?


박효종 교수의 얘기는 참 묘한 논리이고 모순된 사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인권=무책임, 체벌=책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철학적, 논리적 근거가 어디 있는지 궁금합니다.

체벌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성찰하고 조사해 봤는지? 의문이 많이 드는데, 박효종 교수의 글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오히려 체벌이 사람의 공감능력을 떨어뜨리고 체벌이 교육적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연구들이 많습니다. 

체벌을 하는 교사들도 그것이 인성교육의 방법이고, 때려야 학생들의 도덕적 감수성과 판단력을 키워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건 아닐겁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을 통제해야 하고, 과도한 경쟁과 비인간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을 제어하기 위해 체벌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체벌은 교육의 수단이 아니라 통제의 수단으로 쓰여지고 있고, 그게 현실입니다. 그걸 인정해야 문제가 풀립니다.


맞아야 인간이 되고, 맞아야 도덕적 감수성과 판단력, 자기반성능력이 생긴다면, 어른 들 중에서도 맞아야 할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청소년들 속에 잘못된 모습들이 보인다면, 그것은 안 때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나 어른들의 잘못이 청소년들에게 반영된 측면이 많습니다.
그래서 체벌금지 논란에 끼어들기 이전에, 어른들 스스로 성찰하는 것부터 필요합니다. 왜 우리는 체벌이 필요없는 교육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지?부터 고민하고 성찰하는 게 필요합니다. 체벌금지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분들 보면, 제일 안타까운 게 그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