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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삼의 변방의 사색

교사인 내가 손사탐 특강을 듣고 느낀 단상



얼마 전, 말로만 듣던 ‘손주은 특강’ 영상을 보았다. 그는 ‘손사탐’으로 불리면서 온라인 강의에서 최고 스타로 군림했고, 이를 바탕으로 ‘메가스터디’라는 온라인 기업을 설립하여 코스닥 시가 총액 1조원대의 기업으로 키워낸 사교육계의 기린아다.

내가 본 영상은 겨울방학을 앞둔 고등학교 2학년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었다.

그의 강의는 한 시간 내내 흥미진진했다. 그는 ‘잘 들어~’라는 짧고 위협적인 표현을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을 잇는 연결사로 사용했다. 단호하고 매서운 말투,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강력한 에너지로 주입시키는 카리스마까지 그는 대단한 교수자이며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교육계에 입문할 당시 과외 수업을 했던 한 여학생의 이야기를 1시간동안의 특강의 줄거리로 삼았다. 서울 강남에 살면서 의사 아버지를 두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아 자신감이 없고 외모마저 신통치 않으며 그래서 인상마저 우거지상으로 찌그러져 있던 한 여학생의 인생을 공부를 통해 완전히 역전시킨 이야기였다.

그 여학생과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지금처럼 살면 결국은 네 배경 보고 오는 남자와 결혼해서 그저 그렇게 살 것이다. 앞으로의 네 삶은 사실상 창녀보다 나을 게 없다.’ 그는 이런 이야기로써 그 여학생을 자극했고, 그 여학생은 하루 잠자는 몇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자신의 지도를 따라 미친 듯 공부했다고 한다.

결국 그 아이는 하위권이던 성적이 몇 달만에 상위권이 되었고, 명문대에 입학했으며, 결혼 이후에 다시 공부에 매달려 행정고시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고급 공무원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공부 능력의 80%는 유전자가 결정하며,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개소리다, 고3혁명의 가능성은 잘 봐야 5%인데, 너희들이 이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시키는 대로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죽도록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는 세상 어느 스승도 누리지 못하는 강력한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의 특강을 듣기 위해 부모들이 대신 줄을 서 주었다고 한다.

강의 도중에 조금 딴짓을 하는 학생이 보일라치면 ‘어이, 저기 고개 처박고 있는 개새끼, 나가 이 새끼야’, ‘가다가 교통사고나 나버려’라는 식의 폭언을 일삼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 그는 거의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다. 몇 번 이런 경고를 날렸는데도 다른 짓을 하는 학생이 눈에 띄니 결국 그 학생을 불러내서 때리기도 했다(물론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만약 내가 수업 시간에 그런 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했다가는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누구도 그의 행동과 언행을 문제 삼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오히려 열광적인 제자들이 뭉친 ‘팬클럽’이 있다고 한다.


그의 솔직함과 탁월한 강의 능력, 그리고 공교육 교사들과 너무나 대조되는 헌신성-그는 일주일에 80시간을 강의한다고 한다-이 그의 눈부신 성공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특강 동영상을 보는 내내 무서웠고, 서글펐다.

‘창녀보다 못한 삶’이라는 자극에도, ‘야이, 개새끼야’라는 욕설과 폭력의 위협에도 아이들이 서슴없이 복종하는 카리스마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것은 별거 아니었다. 그는 학벌이 사실상 계급의 낙인으로 기능하는 한국사회의 그 강파름과 탈락과 배제에 대한 공포감을 부추겨 돈을 버는 장사치일 따름이었다.


한국의 교육에는 손사탐의 특강에서 보듯 탈락과 배제에 대한 ‘공포’로써 아이들을 자발적으로 무릎 꿇리는, 이 지옥같은 경쟁 체제를 떠받치는 어떤 힘이 훨씬 심층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손사탐의 특강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창녀보다 못한 삶’이라고 아이들에게 들이대는 이 어이없는 공포의 상징 기제를 넘어서는 ‘다른 삶’의 형상이 우리에게 있는가를 생각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결국 이것은 결국 교사인 나 자신의 삶의 문제임일 실감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어이없는 공포의 부추김에 맞서 ‘영혼의 성장과 자유’를 옹호하는 투쟁의 길이었으며, 다른 답은 달리 없어보였다.

** 광주교사신문 2010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계삼 선생님은 경남 밀양의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교육과 관련된 좋은 글들을 여러 신문, 잡지에 쓰고 계십니다. 최근에는 그동안 써 왔던 글들을 모아  '영혼없는 사회의 교육(녹색평론사)'이라는 책을 내기도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