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글 이야기

무상급식이 아니라 존엄급식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하위 30%만 무상급식?, 그건 아닙니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6. 15. 10:38

'이십대 전반전(골든에이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이십대 전반의 대학생들이 쓴 책입니다.

이 책을 읽다가 참 공감이 가는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학생이 쓴 글이었는데요.

 
중학교때 우유급식을 받으면서부터 대학에서 장학생 선발, 기숙사 선발에 이르기까지 여러 혜택을 받았지만, 그런 과정이 너무 싫었다는 것입니다.

직접 얘기를 들어 보시지요.

 "자기가 근로장학생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 보세요"  2007년 난 두 명의 경쟁자를 제치기 위해 조교 언니 앞에서 우리 집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열심히 설명했다. 근로장학생을 뽑는 기준이 가정형편이기 때문에 문서작업능력, 밝은 성격 따위의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아빠께선 중1때 돌아가셨고, 지금 엄마께서 편챦으셔서 집에 전혀 수입이 없고요. 그리고......."


장학금을 신청할 때도 신청사유를 적는 건 기본이었다. '엄마께서 일용직 노동을 하셔서 수입이 일정치 않고 남동생이 학자금 대출을 받아 빚이......' 등록금을 면제 받기 위해 매 학기 내 현실을 글로 옮기는 과정이 반복됐다. ---------


가난한 이들은 항상 살기 위해 증명해야 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가난한지, 그리고 그걸 증명해내지 못하면 끝이다. 복지예산이 삭감된다느니 기초생활수급자가 즐 것이라느니 하는 소리가 들려 올 때 불안은 증폭된다. 내가 저 사람보다 덜 가난한 바람에, 혹은 생활비 한푼 주지 않지만 아들이 있는 바람에 수급자 지원금이 줄거나 아예 제외돼 버릴 수도 있다. 누가 더 가난한가! 결국 가난한 이들 간의 경쟁이다.






사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을 증명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행정시스템이고 사회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소한 학교교육의 과정에서는 '가난을 증명하라'는 식의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끝나고도 무상급식에 대한 논쟁은 여전합니다. 서울시의 경우에는 오세훈 시장과 곽노현 교육감 당선자간에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위 30%이내에만 무상급식을 하겠다는 얘기(오세훈 시장이 그렇게 말하더군요)는 언듯 그럴싸 해 보이지만,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이 가난한 학생들에게 본인이 '하위 30% 이내'라는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소한 밥먹는 것 관련해서는 그런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자든 가난하든 학교교육과정에서 밥을 먹는 것 관련해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대우받고 존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여러 곳에 예산을 쓸 곳이 많겠지만, 무상급식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무상급식'이라는 용어보다는 '존엄급식'이라는 용어를 써보면 어떨까 합니다. 맘 편하게 밥먹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소중히 하는 상징적인 조치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상은 공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보니, 자칫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무상급식'을 하게 되면 질이 낮은 급식을 하게 되는 것처럼 오해하는 학생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고, 무상급식을 하는 목표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 '존엄급식'이라는 단어를 제안하는 이유입니다. 초.중등학교에서 밥 먹는 것 관련해서 '이런 저런 서류를 내면 네가 얼마나 가난한지 심사해서 밥값을 면제해 줄 수도 있다'고 요구하는 것은 사람을 존엄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지 무상급식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국가가 교육을 책임진다면, 최소한 교육의 전 과정에서 사람을 존엄하게 대우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