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만큼 무거운 문제를 그 아이는 잘 풀었을까?
입춘이 지났습니다.
그리 춥고 혹독하기만했던 겨울나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오래간 만에 동네 골목을 거닐다 후미진 곳에 덩그러니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작은 목련나무 한그루와 마주했더랬습니다. 목련나무 잔가지마다 잎순을 틔우려 연초록 몽우리를 맺어가고 있었습니다. 겨울을 잘 견디어 낸 것이겠지요.
문득 외롭지 않았을까? 추운겨울 혼자서 볕도 쉬 들지 않는 골목 귀퉁이를 지키고 서 있는 일이...
그런데,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나뭇가지에 참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띠었습니다. 아직은 차갑지만 바람도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갑니다. 한 줌 햇살도 공평히 내려 앉아 있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나무 밑둥 어딘가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모인 벌레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무 어딘가에는 개미들도 부지런히 오가고 있겠지요. 보이는 것만이 다는 아닐 테니까요. 그렇게 목련나무는 혼자가 아니라 많은 생명들과 함께 그곳에서 골목길을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생명들을 위해 나무가 있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 덩그러니 뿌리 내리고 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보면서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언제였는지 또렷하지는 않지만 20살 갓 넘었을 때였겠다 싶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었고, 봄을 향해 마지막 기지개를 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밤늦게 집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도와달라"는 한통의 전화 였습니다.
오랜시간 곁에서 봐오던 남자아이였고, 그 전화가 걸려 왔을땐 아마도 그 아이의 나이가 18살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고, 부모님은 두 분 다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오셨습니다. 어려서부터 늘 남동생과 둘이서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둘이는 부러울 만큼 끔찍이 서로를 위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시작되고 오래지 않아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던 것 같습니다. 헤어디자이너가 되겠다면서 미용실에서 일을 시작했고, 제법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 시절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에, 주변의 대학생 선배들이 그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쳤지요. 그렇지만 그 아이는 끝내 해내지 못했습니다. 이후 소식이 끊겼더랬는데, 1년여 시간이 지나 "도와달라"며 전화가 온 것입니다.
내용은 여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여자 친구가 임신을 했다는 겁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며, 수술비가 필요하고 돈이 필요해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아이를 도울 수 없었습니다. 만약 돈을 해준다면 태아도 태아지만 여자친구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을 것이고, 헤어질 것이 뻔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우선적으로 부모님과 상의를 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이야기 했지요. 그 아이는 많이 울었습니다.
한번 만나자고, 만나서 이야기 하자고, 약속하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그렇게 그 아이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공백으로 남아있습니다. 오랜시간 참 따뜻했던 그 아이의 모습을 봐왔으면서도 만나서 이야기 하지 못하고, 전화로 단호히 거절해 버렸던 그 때를 떠올리면서 마음이 싸해 집니다.
조금만 그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했더라면, 도울 수 없다는 이야기를, 그 아이가 헤어질 게 뻔하다고 생각하며 냉정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랬더라면 그 아이를 만나게 되었을 것이고, 부모님과 문제를 상의했을 것이고, 적어도 그 아이 혼자서 지구만큼 무거운 문제를 혼자 해결하라고, 두지는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아이는 두려워서 부모님께 선뜻 이야기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용기를 낼 수 있는 말이 듣고 싶었는 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 아이는 누군가가 자신의 문제를 그냥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아이의 말을 그냥 들어주지도 못했고, 면박을 주었지요.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래서였을까? 그 때 놓쳐버린 그 아이가 늘 마음 한켠에 살아 있습니다. 겨울이면 가끔씩 그 아이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 때 그 지구만큼 무거운 문제는 잘풀어냈을까? 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20대를 보내면서, 그 때 놓쳐버린, 아니 너무 쉽게 놓아버렸던 그 아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지역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청소년 일을 10년 이상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 글을 보내주신 몽당연필 선생님은 경기도의 어느 도시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며 청소년 활동을 풀어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