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의 교단일기

학생인권조례, 아이들의 입을 열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1. 2. 10:30




토요일 3교시 학급회의 시간. 

웬일인지 아이들이 분주하다
. 서로 말하기에 바쁘다.

자신들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일이라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할 말들이 쏟아진다.

발표를 시켰더니 서로 하겠다고 여기 저기서 손을 든다.

 

무슨 풍경인고 하니, 우리 학교의 학생생활규정을 학생인권조례에 맞춰 개정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학급회의 시간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공포된 후, 각 학교에서는 학교생활규정을 조례에 맞춰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서도 각 학급별로 의견을 모으게 된 것이다.

 
4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어떻게 아이들의 의견을 모아낼까 고민하다가 여덟 모둠으로 나누어 학생부에서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모둠의 의견을 정해보도록 했다. 그리고 모둠의 의견을 모아 우리반 전체 의견으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역시 자신들의 학교 생활과 너무나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주제들-두발, 복장, 핸드폰 소지, 체벌-이다 보니 얘기하기도 쉽고, 누구나 한마디씩은 다 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예민한 주제인 머리 길이에 대해서는 제한하지 말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고, 염색과 파마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어떤 아이는 염색까지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머리 길이의 자유마저 얻어내지 못한다면서 아주 현실적인(?) 발언을 하기도 해서 다른 아이들의 공감을 얻어내기도 했다.

 
그냥 초등학교 때처럼 머리 모양이나 길이나 모두 자유롭게 허용하면 되지 않느냐라는 의견을 내는 아이도 있었다.

 

그 의견을 들으며 그러게, 왜 초등학생은 규제를 하지 않다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규제가 그렇게도 많아지는 것일까? 오히려 중고등학생이 되면 초등학생보다 더 성숙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많아지는데...’ 라는 생각이 스쳤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이들을 나이에 걸맞게 대접해 줌으로써 어른으로 성숙할 기회를 준 것이 아니라, 규제를 통해 성숙을 가로막아 온 것은 아닐까?

 

자신들이 낸 의견 그대로 학생생활규정이 결정되지 않더라도 결정 과정에서 아이들의 의견이 진정으로 존중받고 비중있게 고려된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진정 아이들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일 거다.


호박꽃 선생님은 경기도 어느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호박꽃의 교단일기'는 호박꽃 선생님이 교실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소소한 일상들과 그 속에서 부딪히는 고민들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