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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청소년들의 눈으로

사유화된 사립학교? - 어느 관선이사의 기억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쯤에 어느 사학 재단의 관선이사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 교사들이 재단비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분규가 발생하여 관선이사로 파견된 것이었는데요.

어쨌든 3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에 관선이사로 사립학교의 현실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가서 현황을 파악하니, 설립자가 이사장이고, 아들이 학교의 행정실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친인척들도 교사로 들어와 있었구요.


이사들은 있었지만 허수아비였습니다. 이사회는 열리지도 않는데, 이사회 의사록만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유령이사회였던 셈이지요.

그런 이사회가 학교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그 학교는 돈과 관련된 비리, 교사채용과 관련된 의혹들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마디로 학교가 사유화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사립학교를 설립한 분들은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국가가 교육을 책임질 돈이 없어서 우리가 우리 재산을 내서 학교를 설립해서 이만큼 우리나라 교육을 키워놨다. 그런데 이제와서 우리를 도둑놈 취급한다'

예전에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서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할 때에, 사립학교 설립자들이 많이 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사립학교를 설립해서 운영한 기여는 당연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조금 전에 이야기한 '사유화된 사립학교'는 없어야 합니다. 학교는 교육기관이고, 그에 걸맞는 의사결정구조를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합리적인 선에서 지배구조를 민주화하고 투명성,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립학교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면 '도둑놈' 소리는 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내용을 보니, 이건 사립학교를 교육기관이 아닌 사익추구기관으로 만들자는 얘기입니다.

사립학교에 대한 정부지원은 늘리고, 운영은 설립자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개방형 이사제, 대학평의원회 등 내부견제기구들은 모두 없애고, 설립자의 친족들로 이사회를 채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학교법인 해산 때 잔여 재산의 30%까지 설립자나 직계 가족에게 준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동안 사학재단 이사장에게는 보수를 줄 수 없게 되어 있었는데, 보수지급도 가능하게 한 답니다.  

학교회계와 법인회계를 통합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학교돈을 법인에서 꺼내 쓸 수도 있게 됩니다.



이런 내용의 법개정은 가뜩이나 사유화된 사립학교를 더욱 사유화시킬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즘 국회의원들 하는 걸 보면, 이런 법이 통과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큽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10년전에 관선이사를 했던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때 행정실장을 했던 설립자의 아들이 지금 이사장을 하고 있더군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